2016년 창의 서밋은 쉽니다. 아니, 놉니다.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한 마당 펼쳐놓고 놀려고 합니다. 모두가 점점 더 바빠지고, 점점 더 힘들어지고, 점점 더 갑질을 하고, 강도는 더욱더 심해지고 있어서 우리는 무장해제하기로 했습니다. 이 바쁜 와중에 무슨 창의로움이 있고 그 불안한 마음에 무슨 성과가 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냥 널널하게 놀기로 했습니다.

 하자센터는 그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환과 연대>를 줄기차게 이야기했는데, 그 전환이란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사회구조도, 마음의 구조도, 또 몸도 쉽게 바뀌지 않더군요. 익숙한 방식으로 일하고, 아래위 눈치를 살피고, 예민하게 망가지는 나를 보호하고, 어렵지만 배려하는 자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면서 다들 계속 바쁘고 힘들기만 하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놀기로 했습니다. 죽돌, 판돌, 허브 주민들, 다 놉니다. 그간 하자와 지속적으로 만나온 단골들, 앞으로도 보고 싶을 손님들, 하자가 정겹다 느끼는 이들, 하자를 그리워했던 분들, 다 오셔서 이곳저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놀면 됩니다. 하늘 높고 코스모스 화려한 가을날일 테니까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테지요.

 노래 부르는 판이 열려 있을 것이고,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면 어딘가에 자리를 잡으시면 됩니다. 시장판을 차려도 좋고, 멋진 옷을 입고 팔랑거리며 걸어 다니셔도 좋습니다. 밤새 춤을 추셔도 좋습니다. 먹을 것은 준비할 테고 또 갖고 오셔도 좋습니다. 하자의 오픈 하우스라 생각하고 어슬렁거리며 오세요. 각자의 존재를 축복하는 자리, 오래된 관계를 고마워하는 자리입니다.

 

 올해 창의 서밋의 오프닝 대담을 열 사람들은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즐겁게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오랫동안 질문해 왔던 내용들을 들려줄 예정입니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기후변화 시대를 사는 10대가 던지는 이 질문들에 대해, 뇌과학자, 생물학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인류학자가 화답합니다. 명쾌한 답을 주기보다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시대의 난감함에 대해 공감해줄 ‘좋은 어른들’입니다.

 

 KAIST의 정재승 교수는 ‘알파고’의 등장과 함께 모두가 인공지능에 대해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일사불란한 사회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 뇌과학자입니다. 요즘은 ‘한국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사람만 양성한다’며 교육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언어와 수리 중추 영역의 발달에만 관심을 두는데,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유일하게 뛰어난 영역이 이 두 부분이라는 것이지요.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인간이 생명체를 변형시킬 수 있게 된 ‘유전체 시대’, 혹은 ‘포스트 게놈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에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DIY 가구를 만들 듯이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부산행’이 현실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올해 봄에는 매캐한 미세먼지로, 여름에는 이상고온으로 모두 고생이 많았지요. 세계는 이런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협약을 체결하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경유차가 문제라거나 전기 요금을 낮춰야 한다는 논의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후불황’의 저자인 김지석 에너지 전문가는 ‘사람을 해하고 사회 인프라를 파괴하고 식량 부족을 유발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기후변화는 전쟁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와 같은 국제회의에 법률자문으로서 활동 중인 (사)기후솔루션 대표 김주진 변호사도 오프닝 대담에 함께합니다.

 

 하자마을의 가장 오래된 주민인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런 모든 일을 ‘풀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하지 말고 ‘질문’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합니다. 고도성장이 당연시되던 1차 근대의 사고에서 벗어나,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는 질문들을 던지자고 말입니다. 한국과 같이 초고속 경제 성장 후에 더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하는 동아시아 지역 청년들이 실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몸을 추스를 수 있는 마법의 장소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실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찾아낸 특별한 손님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들은 석유가 없는 ‘석유 비축기지,’ 그 버려진 땅에서 7년간 전환을 하고 있던 부족입니다. ‘비빌기지’라는 이름의 ‘이행기 공간’을 만들어낸 분들이지요. ‘이행기 공간’이란 기존 방식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을 인지한 시 당국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시민들에게 도시재생의 실험을 맡긴 실험적 공간을 말합니다. 근대문명의 원동력인 석유를 비축하던 이곳이, GMO의 대안이 될 토종 씨앗을 비축하는 생태-문화 기지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서밋 둘째 날인 토요일 저녁, 다 같이 비빌기지로 옮겨가 좋은 기운 받으며 춤을 추려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쉬는지, 우리가 얼마나 잘 노는 지, 우리가 얼마나 몸을 바꾸어내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바꾸어내고 있는지 그날 보면 알 테지요.

하늘 높은 날, 반갑게 만나겠습니다. 돗자리 깔 분만 미리 연락해주시고, 아닌 분은 달력에 동그라미만 치면 됩니다. 맑고 환한 기운으로 그날 만나요!

 

2016년 10월, 하자 마을의 오래된 주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