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창의서밋 리뷰 / 서밋대담

20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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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 리뷰 / 생존주의 사회에서 배움의 기쁨을 생각하며

 

 

 하자에 수시로 방문하는 청소년 중 한 명과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 친구는 인터넷으로 청소년 기관을 검색하다가 하자센터를 알게 되어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 학교를 다니지만 학교 밖 활동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딱히 친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 책을 읽거나 동네 산책 겸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하자센터에 들르곤 하였다. 지난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날에는 이제 고3이 된다며 한동안 자주 들르지 못할 것 같다며 인사차 방문했다. 나는 학교 공부는 어떠한지,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친구는 자기 성적이 나쁘지 않고, 공부 또한 열심히 한다고 대답했다.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자기 몸을 의자에 묶어두고 몇 시간씩 꼼짝도 안 하고 공부만 한다고 알려주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가로 1m, 세로 1.4m, 높이 2m의 원룸형 가정용 독서실 책상 ‘스터디스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인체공학적 설계로 학습 집중력을 높이고, 원목을 사용하여 삼림욕과 같은 피톤치드 효과는 물론 졸음방지용 발 지압봉이 달려있다’고 선전하는 수험생 맞춤형 제작가구인데 한편에서는 수험생을 위한 ‘현대판 뒤주’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학습 보조 제품의 등장에 그저 놀라워하기 보다는, 최대한 일상의 번잡함을 차단하고 오로지 높은 성적을 위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학생, 교사, 학부모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심리적으로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된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친구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며 경쟁심을 부추기고, 주변 환경과 철저히 고립되어 공부만 하며 자라난 이들은 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느끼고 이해하게 될까? (부모들의 노후 자금을 갉아먹는 교육비의 증가 추세는 논외로 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 조금이라도 연봉이 높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 치열한 입시경쟁에 몰두하며 교육 소비자가 되어가는 이 현장에서 문화연구자 엄기호가 이야기하는 ‘내 몸의 한계를 알고, 내 몸의 한계 속에서 내 안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게 되는’, 즉,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 ‘배움의 기쁨’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번 창의서밋에서 진행된 ‘서밋대담- 생존주의 사회의 교육: 만능감과 패배감을 넘어서’는 무한경쟁의 생존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대를 감지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인지하는 (유아기적) 만능감과 스스로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고 느끼는 패배감 사이를 오가는 청소년들의 ‘성장과 배움’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는 시간이었다.

  

 

입시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청소년, 학부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정신과의사 하지현 교수는 이번 대담에서 태아와 유아기의 ‘전능감(omnipotence)’에 대해 설명하며, 인간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유아기의 전능감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좌절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만능감이 충족되지 않아도 스스로 믿을 만하고 타인의 사랑이 느껴질 때,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강한 자기애가 만들어지는 반면, ‘나는 여전히 완벽해야 하고, 전능해야 된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게 되면 병적인 자기애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고, 자라난 지역사회와 좀 떨어진 곳으로 증학교 진학을 했다가 괴롭힘을 당하고 등교거부를 했다는 또 다른 대담자 구마시로 도루(<로스트 제너레이션 심리학> 저자)는 아파트 뉴타운과 같은 도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생활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비롯하여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전능감과 자기중심성이 강화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허히 바라보기 보다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과 조건에 화를 내거나 홀로 무력감이나 패배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문화연구자 엄기호는 만능감이 불러온 패배감에 빠져들 때 희망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섣부른 긍정이나 강박적인 노력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일단 몸에 힘을 빼는 것부터 배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번 서밋을 계기로 생존주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기와 주변을 돌보는 것을 포기한 채 고립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함께 모여 돌아보고 전환을 모색하는 자리가 계속 이어져 나가길 바란다.

  

 

글 / 최은주(거품, 기획 2팀)